지역경제 활성화가 소멸하는 도시를 살리는 방법 아닐까? - 창업으로 혁신하는 로컬 ①편

(출처: 행정안전부 홈페이지)

한국사회는 이미 2017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한 데 이어 2025년부터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빠른 성장 못지않게 인구절벽 현상이 빠르게 두드러지고 있으며, 이로 인한 연쇄적인 사회현상들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장 심각한 건 지방소멸 위기입니다. 그런데 지방소멸 속도는 인구 감소 수준의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선 청년층의 대도시 집중현상이 더욱 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육, 취업 등 지방에서 얻지 못하는 기회를 찾아 떠나는데, 결혼 후 출산과 육아를 염두하고 그 인프라가 있는 곳에 정착하다 보면 영영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산업 전반의 심각한 문제는 숙련자 부족현상입니다. 이건 청년인구의 급감으로 인해 산업 전반적인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지역소멸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중소도시의 경우, 산업단지마다 자리잡은 풀뿌리 제조업체가 상당수인데, 인력수급문제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아직까지는 갓 은퇴한 노년층을 대상으로라도 일시적인 인력수급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이들도 영원히 은퇴하는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바꿔말해 산업과 사업체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는 거죠.

◆인구절벽→산업위축→지방소멸

산업을 유지할 수 없어진 업체가 다른 도시로 이전하거나 폐업하면 지역은 더욱 위축됩니다. 소멸의 속도도 가속됩니다. 2023년 6월 20일 보도된 뉴스(SBS, 면 인구 1천 명 무너지자 유일한 주유소도 폐업)는 충격이었습니다. 지방소멸의 위기감이 시청자의 피부에 와닿는 장면이었습니다.

인구 1천 명 선을 유지하지 못하는 마을에서 생활 필수시설들이 차례차례 문을 닫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입니다. 일정 정도의 정주여건을 보장하는 병원, 약국, 주유소, 슈퍼마켓 등이 사라지면 기본적인 생활을 해나갈 수 없습니다. 약국을 가기 위해 차로 달려 옆 마을을 가야합니다. 그런데 주유소마저 문을 닫아 차 끌고 다니기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마을을 지켜왔던 주민들마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살던 곳을 떠나야만 하는 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겁니다.

이 사실은 지방소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단순 숫자상의 문제, 지자체의 과제로만 여기거나 특정지역의 산업군에 해당하는, 정말정말 남의 이야기로만 여겨졌는데, 내가 사는 마을, 나의 고향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될지 모릅니다.

◆압축도시가 답일까?

전문가들은 압축도시(컴팩트 시티)를 하나의 대안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압축도시란 도시의 확장을 억제하고 직장, 여가, 의식주에 해당하는 도시기능들을 원도심을 포함한 기존 시가지 내부로 가져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개념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반경을 압축하기 때문에 원도심 공동화를 최소화하고 적정 인구가 유지되므로 상권도 살아날 수 있다는 거죠. 탄광 쇠퇴 후 압축도시 계획에 성공한 일본 유바라시, 철강산업 쇠퇴 후 압축도시화한 미국 오하이오주 영스타운, 도시팽창 이후의 공동화를 막기 위해 도시의 성장한계선을 정한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등이 좋은 사례입니다.

물론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 속에 어디까지를 일종의 저지선으로 두고 압축도시로 변신이 가능할 것인가, 원도심의 재생이나 재개발이 갖는 어려움 등을 토로할 수 있겠지만, 생활 필수 시설의 확보 측면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좋은 대안을 수립한다 해도 이에 뒤따르는 민간의 호응이 없으면 도시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라는 공간 자체가 정주성을 바탕으로 자연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좋은 정주여건을 의미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말 자체가 농경과 취락이 가능한 지형을 의미하는데, 이 말을 현대에 적용한다면 풍부한 일자리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일자리 문제라는 거죠.

◆지역 내 창업 생태계 활성화가 가져 올 압축도시 효과

국내의 압축도시 사례는 없습니다. 압축도시 계획을 갖고 있는 곳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포항이나 울산처럼 특정 대기업이 도시 경제 생태계를 좌우하는 곳이 있지만, 해당 기업이 도시계획을 리드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정치나 행정의 영역보다 높은 자율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업에 거는 기대는 항상 큽니다.

압축도시를 만들어가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다행히도 지역 내 일자리 창출과 도시의 쇠퇴라는 사회적 문제해결이라는 목표로 다양한 경제주체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케이스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SK E&S>의 지역재생 프로젝트 ‘로컬라이즈 군산’입니다.

‘로컬라이즈 군산’은 활기를 잃은 원도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재생과 지역혁신 창업이 동시에 이루어지게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군산의 대기업 제조공장들이 문을 닫으며 발생한 고용위기 상황이라는 지역문제에 주목했습니다. 2019년부터 군산에 뿌리를 내릴 청년 창업가 육성을 목표로 ‘로컬라이즈 타운’을 조성하고 있는데, 청년 비즈니스와 청년 커뮤니티 형성을 위한 거점공간들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창업 생태계를 조성해가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2022년에 2021년까지 3년간의 노력을 정리한 아카이브 자료집을 발간한 바 있는데, 이 자료에 따르면 3년간 26개의 창업팀이 탄생해 127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100억 여 원의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군산을 테마로 한 상품과 서비스 502개를 개발해 로컬브랜딩에 기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시도가 지난 3년으로만 그치지 않고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합니다.

◆지역의 장소성 재정의를 통한 관계인구 효과

‘백주부’라는 별명으로 대중에게 친숙해진 백종원 대표와 그가 운영하는 <더본코리아>가 참여하는 예산시장 프로젝트도 여러 가지 인사이트를 줍니다. 개장 6개월만에 전국에서 137만명이 다녀간 예산시장은 연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600만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백종원의 유튜브 채널 효과 때문이기도 한데, 구독자들을 잠재고객으로 만들고, 예산시장 방문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예산시장과는 별개로 예산군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어 관계인구 형성에 대한 기대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예산시장의 재정의입니다. 인구감소로 인해 상품의 교환기능을 하는 시장의 역할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을 인지하고, ‘푸드코트와 식자재 창고의 결합’ 형태로 예산시장을 재정의하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백종원 대표 스스로 F&B 잘하는 기업이 예산시장 프로젝트를 잘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기업이 가장 잘하는 일, 항상 하고 있는 업무를 지역사회에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성비 좋은 메뉴구성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가 저렴하면서 품질좋은 식재료 구입인데, 더본코리아의 매입을 연결해 바잉파워를 갖게 함으로써 적절한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기업의 밸류체인을 지역 창업자와 연결해 공존공생하는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관계인구, 생활인구 형성을 위한 작은 기업의 인프라 제공도 눈 여겨 봐야

속초로 귀촌한 청년들의 기업 <트리밸>의 활동상은 보다 적극적인 생활인구의 개념을 보여줍니다. 유럽 배낭여행 과정에서 경험한 호스텔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지역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속초 시외버스터미널 뒷골목에 매물로 나온 낡은 여인숙을 발견하며 ‘소호259’라는 이름의 스테이를 열었는데, 이게 매우 특별합니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숙소라는 하드웨어가 아닌 숙박경험이었습니다. 호스텔에 모인 여행자들끼리 즉석에서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새로운 여행을 떠났던 추억을 우리나라 청년들의 현실적인 상황에 응용했습니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형태의 속초 탐방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활동을 통해 자연스런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했습니다. 해를 거듭하며 1년에 1만여 명이 다녀가는 공간들이 되었고 ‘속초 소호거리’라 불리기도 하는 청년들의 명소가 되는데 성공했어요.

청년들의 커뮤니티 활동이 지속되자 그중 일부가 속초 정착하는 일도 생겨났고, 속초를 무대로 창업에 도전하는 이들도 나타났습니다. 이에 <트리밸>은 숙박경험과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일에도 뛰어들었습니다. 숙소를 개조해 워케이션을 원하거나 속초에서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공유오피스를 준비했습니다. 2022년부터는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사업에 뛰어들어 <라이프밸리>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의 속초 정착을 보다 적극적으로 돕고 있으며, 현재는 로컬콘텐츠와 워케이션을 결합한 과학기술부 메타버스 프로젝트에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연속해가며 자연스럽게 관계인구와 생활인구를 늘리는 비즈니스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영리추구를 위한 자율성에서 사회혁신의 해법이 나올 수도 있길...

지역소멸 위기 속에서 지역경제를 살릴 방안을 찾다 보니 대기업, 중소기업, 소기업의 사례를 하나씩 꺼내 보았습니다. 각각 다른 현실, 다른 지역, 다른 비즈니스를 하고 있지만,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지역의 지속가능성과 일치시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날이 갈수록 상생경영, ESG경영, 사회적 가치 실현에 대한 기업들의 의지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해 지역소멸에 대한 기업의 인식이 커 가고 깊어질수록 기업의 비즈니스 행위가 보다 창의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쪼록 착한 기업들의 출현을 고대해 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