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이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이 아니라 윤길동이라 불러야겠습니다"
"진짜 여기저기 많이 다니시네요"
수년째 만나는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들이다. 나의 답사와 탐방은 20년 전부터 시작됐다.
20년 전의 나는 소상공인이었다. 날마다 위기였다. 내가 하는 업종은 변화하는 세상에 적합하지 않았다.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위해 배움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경영경제 분야의 책을 읽는 걸로 만족했지만, 여기엔 살아 움직이는 비즈니스가 없었다. 1인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 적합한 이야기도 부족했다.
마침 이직, 전직, 창업과 관련한 이슈가 30~40대 직장인들에게 큰 화두가 되다보니 자기계발 강연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시간을 내어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여전히 나에게 딱 맞는 뭔가가 없었다. 책으로 만나는 사례는 생각보다 구체적이지 않았고, 강사들을 통해 듣는 이야기는 청중을 주목시키기 위해 극화되기 마련이다. 나 자신이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성공비결을 손에 얻으려면 그만큼의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동네 소상공인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어디는 손님으로, 어디는 이웃으로 방문하면서 짧은 대화를 반복하며 그 속에서 지혜와 지식을 얻었다. 몇 번인지 기억도 못하겠지만 여러 차례 사업아이템을 바꾸고, 나 또한 여러가지 비즈니스 페르소나를 갖게 되며 이런 활동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극적인 계기를 이룬 것은 주간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게 되면서다. 5년 정도 글을 쓰며 나 자신이 지닌 콘텐츠의 부족을 느꼈고, 콘텐츠로 풀어낼 능력의 부족함도 느꼈다. 행동 반경을 넓히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사용해왔던 분석의 틀도 작은 돋보기에서 현미경으로, 손에 잡히는 망원경에서 멀리 내다보는 인공위성으로 바꾸게 된 것도 이때다.
어느 덧 여기저기 소상공인을 찾아다니며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다른 형태의 콘텐츠로 풀어가는 활동도 10년을 채웠다. 어느 틈에 창업 경험 하나 없이 학자, 컨설턴트, 전문가라며 남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함부로 논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걸로 돈을 번다. 자기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틀리지 않으려 하다보니 세상 돌아가는 그저그런 이야기-트렌드 중심의 창업 이야기만 할 뿐이다. 이런 건 성공 창업을 위한 솔루션이 될 수 없다.
창업자는 리스크를 끌어 안고 창업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창업솔루션은 리스크를 감내해야 나온다. 전문가라면 그 리스크를 명확하게 간파해야 하며, 창업자가 그 리스크를 최대한 피할 수 있도록 돕고, 그렇기에 그런 리스크를 끌어안고 용감히 창업해 도전하도록, 기필코 성공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그동안 내가 수집한 이야기들이 산 지식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은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하고, 어떤 것은 창업자 한 사람에게만 특수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또 어떤 것은 이종 창업이나 융복합형 창업에 적절한 것도 있다.
되돌아보니 200여 회의 주간신문 칼럼 연재, 100여 회의 창업 팟캐스트, 단행본 <망하지 않는 창업> 출간 등으로 나름의 역할을 수행했다. 2019년 후반기부터 2021년 전반기에는 로컬 창업자들을 다루는 로컬 트렌드 미디어 <비로컬> 편집장 업무를 통해 창업자들을 응원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등장은 또 다른 상황을 만들었다. 팬데믹 충격은 엔데믹으로 넘어오며 완화되어 먹고 살기가 나아질 줄 알았으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장기화되고,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이 가열되며 세계 경제 자체가 전망이 어두운 상황이다. 이미 2023년에 불경기를 예고했고, 2024년 들어 줄줄이 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항상 어려움에 처하는 것은 규모가 작은 소상공인들이다. 어물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들을 위해 다시 <망하지 않는 창업> 이야기를 해야할 때가 왔다.
소상공인 이야기로 시작하다보니 필자의 관심이 동네 가게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보였을지 모르겠다. 필자가 소상공인을 포커싱한 이유는 '소상공인'이란 용어가 <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용어라서다. 소상공인이란, 근로소득이 신고되는 상시 근로자 4인 이하를 채용한 도소매, 서비스업 혹은 상시 근로자 9인 이하의 제조업, 건설업, 운수업을 칭하는 말이다. 우리 주위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작은 사업체들 거의 모두가 '소상공인'이라는 이야기다. 필자가 관심갖는 대상은 소위 '스몰 비즈니스'라고 일컫는 모든 영역이라는 말이다.
10여년 간 관찰한 결과, 스몰 비즈니스에 종사하고 있는 소상공인 사업체들의 흥망성쇄는 대표자 1인의 역량이 상당히 중요하다. 인원이 몇 명으로 늘어나든 간에 주위 사람들은 대표자를 돕는 역할을 넘어서지 못한다. 만일 대표자 못지 않게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는 인력이 있다면, 그 시점부터는 소상공인을 졸업해 중소기업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창업자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아이템을 선택하느냐 안 하느냐에서 생존여부와 지속여부가 결정된다. 비즈니스가 본 궤도에 진입한 이후에는 비즈니스 자체보다 비즈니스를 둘러싼 환경요인이 비즈니스 지속여부에 영향을 미친다. 이때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 할 때가 도래하는데, 이때가 바로 '혁신'의 시점이다. 문제는 '혁신'이다. 아무리 혁신을 외쳐도 혁신을 이루지 못한다. 이유는 3가지다.
첫째, 시중에 나온 혁신 이야기는 대체로 중견기업 이상의 스토리다. 혁신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과 자금과 브랜드력이 있어 혁신을 위한 시간과 비용과 에너지를 끌어올 수 있다. 둘째, 혁신 이야기꾼들이 스스로 혁신을 이룬 사람이 아닌, 관찰자들이기 때문이다. 저자나 강사로 만나는 혁신 이야기꾼들은 대체로 컨설턴트들이다. 자기가 자기 살가죽을 도려내본걸 말하는 게 아니라, 살가죽을 도려내라고 시켜본 과정을 이야기하는 거다. 셋째, 혁신 주체와 대상이 누구이며 혁신에 실패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혁신주체는 비즈니스맨 자신이며, 대상도 자신이다. 셀프리더십, 셀프매니지먼트를 해야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성공경험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자가 모두 재담꾼이나 작가가 아니기에 그 노하우가 전파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롭게 시작하는 <망하지 않는 창업> 이야기를 위해 나는 '자기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나가려고 한다. 새로운 사례들을 발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이를 튼튼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 불경기에 필요한 자기혁신은 보다 근본적이다. 업종전환 외에도 전직이 필요할 수도 있기에 보다 포괄적인 연구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우선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트렌드를 다시 열거하고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어느 정도 최소 3~5년 후의 비즈니스, 10년 이후의 롱텀 비즈니스를 이야기할 수 있다. 다음으로 다양한 비즈니스의 현장을 돌아보고 벤치마킹해 자신의 비즈니스와 비교·대조하며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동종·이종 아이템의 결합, 협업의 가능성 등을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지역소멸, 슈링코노믹스 등에 맞서는 새로운, 혁신적인 로컬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려 한다. 시공간의 차이에서 오는 비즈니스 센스, 지속가능을 위한 차이점과 차별점을 생각해볼 계기를 찾고자 한다.
이 지점이 <매거진 S>의 쓸모가 될 것이다. 내 글을 읽어줄 친구-독자들은 이런 쓸모를 원하는 사람들일 거다. 편짱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모습을 보이겠지만, 북소리와 장구소리에 어깨춤을 추고 흥얼흥얼 콧노래 부를 친구들을 상상해 본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밖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 쓴 글을 조금 고쳐 기사 건수를 늘리는 꼼수를 벌이고 있다. 다른 해야할 일도 많은데 이런 일탈을 즐기다니... 역시 MBTI가 P로 끝나는 사람은 이런 건가? 2024년 06월 22일 다시 씀.(원글은 2022년 12월 19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