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elf의 시작!
매거진S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남겨 본다. 일의 시작은 2021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출판 등록을 하러 구청에 갔다가 우발적으로 서류를 접수하면서 부터다. 2013년부터 운영해오던 <시사N라이프> 필진들의 글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보려니 출판 등록이 필요했다.
출판 등록은 구청에서 담당한다. 등록 신청을 하고 1주일 정도 지나면 등록증이 나오는데, 등록증을 수령하러 구청을 재방문하는 과정에 갑자기 떠오른 게 있었다. 바로 잡지 등록이다.
일반인들은 신문이나 잡지 모두 같은 언론매체라고 생각하지만, 둘은 다르다. 관련 법령이 다르다보니 신문은 광역자치단체 소관, 잡지는 기초자치단체 소관이다. 출판 등록을 하러 구청에 갈 때 잡지 등록을 함께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차 싶었다. 이 기회에 잡지 등록을 하지 않으면 잡지를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를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뭐가 되었든 이번이 기회라 생각했다.
"지금 바로 잡지 등록을 신청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담당 공무원이 신청서를 내주었다. 뭔가를 해보겠다는 기세는 좋았으나, 난감했다. 무슨 잡지를 만들지, 잡지 이름은 뭐라고 할지 아무 생각 없이 냅다 덤벼들었던 거다. 치기 어린 철없는 소년도 아니고 이게 뭐냐?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신청서를 얼른 채워 내야겠다 생각했다. 정 안 되면 나중에 제호 변경 신청을 하면 되지 뭐.
당장 머릿 속에 떠오르는 잡지 이름을 흉내내보자. 마침 <매거진 B>가 떠올랐다. 영문 이니셜만 바꾸면 완전히 다른 잡지 아니겠는가? <매거진 B>에서 <매거진 F>도 내고 있으니 A부터 Z 26개 글자 속에서 B와 F 2개를 뺀 24개 중 아무거나 하나 고르면 될 일이다.
막상 이니셜로 표현할만한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다음 일정도 있어 더 이상 지체하기 싫어 최근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슈로 정해보기로 했다. 마침 그 당시 만나던 사람들과 대화하며 자주 사용하던 단어가 '지속가능'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잽싸게 검색해보니 'sustainable'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여기서 'S'를 가져 와 <매거진 S>로 정하고, 발행 목적은 거창하게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저널리즘 접근"이라고 적어 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나도 모르게 너무 거창한 주제를 정했던 거다. '지속가능'한 이야기를 하자니 범위도 넓고, 파고 들자니 너무 깊어 바닥까지 팔 수도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종이 잡지 형태로 풀어낼 생각까지 하니 더더욱 답이 나오지 않았다. 뭔가 심오한 시사 월간지가 나올 판국이다. 그런 의도가 아닌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지?
물론 각 잡고 진지하게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저널리즘 접근"을 해나갈 수는 있다. 근데 재미가 없다. 마음 가지 않으니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이 잡지를 누가 읽을까? 어떤 포맷의 잡지라야 읽어볼 생각이 날까? 이런 생각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다 보니 어느 새 2024년 6월이 되었다. 덧없이 3년의 시간이 흘러간 거다.
지금 와서 돌이키면 3년 간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뱅뱅 돌았던 시간은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기도 했다. 뭔가를 기획하려 해도 좋은 기획이 안 나왔고 의욕도 떨어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런 상황을 축적의 기회로 삼아보기로 했다. 목적을 두지 않는 취재여행을 반복했다. 취재여행 과정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새로운 생각과 느낌으로 내재화되기 시작했다.
"서당개 3년"이라는 속담 속 말처럼 3년이라는 시간은 축적을 통한 성장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마치 변증법에서 말하는 '양질전환'처럼 3년의 평범한 축적은 성장이라는 평범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돌이켜보니 나름의 일관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여전히 나는 창업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창업자들의 노력과 성과를 알리고 싶은 열망이 있다는 거다. 2014년 펴낸 <망하지 않는 창업> 이후 10년이 지났는데, 그때와 지금의 나는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접근을 시도하려는 거다. 당시엔 창업의 '방법론'을 정리해 보려 했다면, 이제는 일정한 법칙으로 종합할 수 없는 창업의 다양성과 차별성을 보다 현장감 있게 풀어내고 싶어진 거다.
또 하나 장소성과 로컬리티에 대한 깊은 관심이다. 고민하는 3년 사이 어느 틈엔가 역덕(역사 덕후)이 된 듯했는데, 내가 관심갖는 역사는 장소와 관련이 깊다. 특정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렀는 지가 늘 궁금했다. 나의 관심이 어떤 것을 향하고 있는지 예를 들어 보겠다.
현재의 장미제일시장은 과거 중화제일시장의 발전과 함께 개천 너머로 점포들이 하나 둘 늘어나며 시장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름없이 '골목시장' 정도로 불렀는데, 중화제일시장이 제일프라자로 이름을 바꾸면서 골목시장이 중화제일시장이라는 이름을 가져오게 되었다.
중화제일시장은 일제강점기 때 형성된 시장이다. 중화동은 자연취락 몇 개를 바탕으로 정해진 행정구역이었는데, 취락 가운데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이 바로 여기였고, 첫 번째로 형성된 시장이란 뜻에서 '제일'시장이라 이름 지어진 거다.
현재의 중화동 주민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장미제일시장이 형성되는 데는 뜻밖의 일이 변수가 되었다. 지금의 제일프라자, 당시 중화제일시장 지하에 신설 중인 경찰서가 임시 입주한 거다. 현재의 중랑경찰서인데, 당시의 이름은 태능경찰서였다.
경찰서가 입주하자 상권은 더욱 활성화되었고, 여기서부터는 나의 추측이지만 경찰서가 시장 공간을 차지하다보니 상권의 성장과 함께 더 많은 상점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게 당시 개천으로 단절되 더 이상 늘어날 수 없는 시장 상권이 개천 건너편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계기가 아니었을까?
이런 내용은 역사책으로 편찬되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에도 한계가 있다. 원문출처를 알 수 없는 개인의 블로그나 위키백과, 나무위키 등에 의존해야 한다. 사실 옛날 신문을 뒤지거나 향토지를 뒤지는 수고를 해야 하는데, 그런 걸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나하나 알아가게 된 건, 주민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나는 가벼운 질문을 하나 던졌을 뿐인데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나의 호기심이 대단해 보여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결국 내 호기심에서 출발해 내 손에 잡히는 콘텐츠로 잡지를 만들면 되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를 테면 편집장의, 편집장에 의한, 편집장을 위한 잡지다. 원래 독립 잡지란 게 다 그렇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대체로 독자와 취향을 공유하는 분위기로 잡지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건 그것보다 더 노골적인 거 아닌가 싶지만,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이런 잡지의 독자는 누구일까? 누구긴 누구겠어? 편집장과 친하거나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이겠지. 따라서 나의 독자는 나의 친구라고 한정하고 더욱 편하게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고로 오늘의 <매거진 S>는 <매거진 Self>다. 또 모른다. 어느 날은 <매거진 Story>, 어떤 날은 <매거진 Screen>, <매거진 Small Biz>, <매거진 Society> 등 'S'로 시작하는 다양한 단어들로 내용이 끌려가지 않을까?
글을 쓰고 나니 동이 트고 있다. 2024년 06월 22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