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으로 협업하기

지난 몇 년 간, 나는 '느슨한 연대'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곤 했다. 이유는 대부분의 창업자가 1인기업 형태이기 때문이다. 빠른 성장과 성공모델을 보여주는 창업자들도 있지만, 이는 5% 미만의 소수다. 대부분은 창업자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더러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2~3인 규모의 전형적인 소상공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들은 패턴화된 단순업무를 소화하는 인력이지 대표자의 업무를 복제해 비즈니스를 함께 이끌거나 보완하지 못한다.

이해가 안 된다면 스타트업 기업의 형태와 대조해보자. CEO 이외에 CTO나 COO 역할을 하는 멤버가 존재하는가? 이런 멤버는 없고 단순반복 업무를 대신하는 업무만 있다면 여전히 1인기업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다.

창업 후 일이 늘어나고 바빠지니 새로 충원하게 되는 인원들은 업무의 병목구간에 발생하는 정체를 해결하는 인력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 아르바이트거나 초급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창업자가 맘을 먹기에 따라서는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과로해서 단명하기 싫어 사람을 붙이는 것뿐...

어떻게하면 1인기업이 지니는 효율(솔직하게는 인건비 문제)을 유지하면서 1인기업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해보니, 그나마 1인기업 창업자들끼리의 시너지 창출이 가볼 만한 길이었다. 상호협업으로 인력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협업하는 CEO들이 상호코칭을 통해 협업 기업의 CTO, COO 등 C레벨의 업무행위를 함으로써 다른 CEO를 지탱하는 일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2021년 후반기 이후 본격적인 협업실험을 해보고자 함께할 수 있는 기업들을 찾기 시작했고, 비록 대부분이 실패였지만 다양한 케이스를 경험했다. 각각의 협업관계는 이러했다. 큰 매출을 주는 큰 업체와는 하청공급의 관계로, 제조업 기반의 중소기업과는 독립 프로젝트의 형태로 신규 비즈니스 기획과 프로토 서비스를, 스타트업·벤처에는 제한적인 범위의 직원 형태로, 소상공인들과는 품앗이 차원의 교류와 협업을 마구잡이로 시도했다.

이런 실험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나 자신이 일정 소득을 올리는 한편, 연대하는 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이론화는 하지 못하더라도 실증적이고 경험적인 작은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팬데믹 이후의 불황 속에서 매출이 줄어들고, 조직 확대를 주저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느슨한 연대가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고 진정성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또 한 번 예측하지 못하던 일이 발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며, 세계 경제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자원공급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국제적인 곡물가, 석유, 가스 가격이 오르며 소상공인과 1인기업에게도 원가상승의 부담을 끼쳤다. 금융위기도 시작되었다. 대출이 막히고 금리가 인상되며 자금경색이 바로 왔다. 이미 전년도부터는 소폭 상승하는 정도지만, 인건비와 4대보험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까지 소통한 1인기업과 소상공인들의 현실태를 묘사한다면, 거북이가 등껍질 속에 웅크린 것과 같다. 다른 생각은 접어두고 자신을 보호하면서 주위의 상황을 예민하게 살피는 분위기다. 매출이 전년도보다 많이 미흡한 건 물론, 매출 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운데, 비용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것 하나하나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만드는 요소다.

(출처: 픽사베이)

그래서 '느슨한 연대'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도 모르게 '강력한 동맹'이라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서로 동맹관계이자어 운명공동체가 되어 함께 살아 남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난세를 극복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감을 믿기로 했다. IMF와 벤처버블로 주저앉고, 서브프라임 사태로 주저앉아봐서 경기불황을 버텨내는 건 삶의 한 축이 되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 더욱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전화 통화, 차 한 잔, 밥 한 끼, 술 한 잔을 함께하며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하고 인사이트를 제공하려 노력했는데, 이런 수준으로는 느슨한 연대를 넘어설 수 없었다. 비즈니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반드시 돈을 주고받지 않더라도, 일정한 거래형태가 없다면 강력한 동맹이 될 수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밸류체인의 형태로 서로 엉켜있을 때 같은 생태계 내에 자리잡게 되고, 서로에게 이득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게 비즈니스 상의 인계철선이 되어 동맹이 가동되는 것이다. 인간관계만 가질 때는 호혜적인 거래가 성립되지 않을 때도 있기에 돈의 흐름 때문에 관계가 희미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간 20년차에 걸친 이런저런 실패와 실패, 가끔씩 거둔 작은 성공 사이에서 얻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로는 이종 업무 경험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별 것 없는 것들인데, 이런 것들을 두루 겪었거나 경험해 본 사람은 별로 없다. 이게 하나의 희소성이리라.

둘째는 이종 업무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업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다. 다양한 성격, 성향, 취향의 사람들과 어울렁 더울렁 엉켜 본 것도 경험이라면 경험,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울고 웃고, 다투고 화해해보았으니까. 참고로 여기서 핵심은 앞의 2가지가 아니라 뒤의 2가지다. 서로 웃으며 행복하게 일을 잘하는 건 누구나 열심히 요령껏 하면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일이 엎어진다든가, 관계가 부러지는 경우엔 어떻게 할 건데? 이걸 담대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님이시라는 거다.

세번째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다. 이를 조금 더 좋게 표현하면, 다양한 비즈니스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이왕 좋은 표현을 찾아내려 노력하는 김에 세련되게 가보자. 인사이트! 그거다!! 20년차의 경력 덕에 나도 모르는새 평범성 속에서 타인의 비즈니스에 필요한 훌륭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확률이 매우 높다.

이런 능력이 있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지만, 슬프게도 이런 모든 일은 나 혼자 스스로 자주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거다. 좀 더 슬픈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뭐든지 혼자 잘 하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소위 '오사마리'를 잘 못해낸다. '사람 인(人)'자가 둘이서 서로 기대어 서로를 지탱하는 글자라고 하는 말은 나를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닌가 싶다. 이런 의존적 존재라서 소시적부터 협업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을 정도다.

사실, "협업으로 협업하기"라고 운율좋게 표현하긴 했지만, 이와 관련한 업종이 존재하긴 한다. 바로 '브로커리지 비즈니스(brokerage business)'다. 이 용어는 최근 증권사나 금융플랫폼에서 투자상품이나 금융상품을 중개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 되었지만, 본래는 중개업만을 의미했다.

얼핏 어감상 '중개업'이니까 '공인중개사'로 생각한다거나, '브로커리지'라는 말 때문에 '브로커'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동종·이종 비즈니스를 융합하거나 협업을 시도하는 데에는 중개사나 브로커가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수요와 공급을 원활하게 연결해 일을 성사시키고, 그 대가로 적절한 중개수수료까지 받을 수 있다면 협업자들 외에 중개자까지 3자가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애매한 점이 2가지 존재한다. 우선 우리나라에는 봉사료라 부르는 팁 문화가 없다. 그러다보니 사회적 통념화된 용역 외엔 비용을 청구하기 애매할 때가 많다. 먹는 문화가 발달하다보니, 거한 한 끼, 술 한 잔과 같은 물물교환의 개념으로 전환되는게 대부분이다. 문제는 가치교환시 등가교환이라 하기엔 매우 서운한 경우가 대부분이란 거다. 예를 들어 함께 한우 20만원 어치 먹고 헤어졌다 하더라도 이 비용은 서비스 제공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눠 먹는 것인데다, 한우를 먹기 위해 오가는 시간, 식사하는 시간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음으로 첫 협업 때는 3자가 함께하지만 이후에는 중개자가 배제되기 쉽다. 함께 비즈니스를 하며 영리를 추구하기는 커녕 술 한 잔 얻어 먹고 사람 소개해주고 끝나버리고 마는 거다. 좋게 끝나면 다행인데 중개자가 빠진 상태에서 갈등이 발생하거나 실망스런 결과가 나올 경우에는 모든 관계마저 소원해질 때도 있다.

(출처: 픽사베이)

이걸 좀 더 쉽게 풀면 이렇게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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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평소 B와 협업하고 있다. 어느 날 C를 만나 C의 애로사항을 듣게 되었는데, B와 C가 협업하면 해결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B와 C를 소개하고 둘이 일하게 했더니 소통도 되지 않고 트러블만 생긴다. 나중에는 하소연 들어주느라 차값, 밥값, 술값만 왕창 들어가고 말았다. C와의 협업 실패 이후, A는 고민을 진전시켰다. 결국 A 스스로 이 협업관계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날 A는 C의 고충을 다시 듣게 된다. 결국 B와의 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엔 방법을 달리 하기로 했다. A 스스로 협업 관계 속에 들어가기로 한 거다. A는 B를 필요로하는 C에게는 B의 업무를 중계하는 에이전트로, C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B에게는 매니저의 역할로 협업에 동참했다.

자신의 필요를 어떻게 정리해 B에게 전해야 할 지 모르는 C 입장에서도 필요한 일이고, C와 수시로 소통하며 마감에 맞춰 충실한 결과물을 이끌어 내야 할 B 입장에서도 A는 업무에만 집중하게 해주는 존재다. 듣고 보니 신박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게 IT분야에서는 '시스템 통합(SI; System Integration)'이라고 하는 일상화된 업무의 하나이고, A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프로젝트 매니저'(PM; Project Manager)라고 하는 별도의 직군으로 존재한다. 이런 프로젝트 매니저가 하는 업무를 살펴보면 "협업으로 협업하기"에 A와 같은 기획자가 왜 필요한지 절감하게 된다. 프로젝트 매니저는 프로젝트 계획, 팀 빌딩, 리스크 관리, 예산 관리, 소통, 품질 관리 등을 통해 프로젝트의 성공을 이끌어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업으로 협업하기"는 분업과 협업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는 업계의 비즈니스를 응용하면 보다 수월해진다. 우선 떠오르는 건 건설회사, 콘텐츠 분야나 엔터테인먼트 산업, 시스템 통합 작업을 하는 IT 업계다. '중개사'나 '브로커'라는 명칭이 아니라 '기획자'의 형태로 개입해 협업을 주도하면 되는 거다. 이런 존재를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인 '기획자'라 불러도 좋고, 이런 역할을 특정해 별도의 용어로 칭해도 좋을 것이다. 이참에 이런 역할의 명칭 공모전을 해볼까?

글을 쓰고 나니 해가 질 시간이 온다.   2024년 06월 22일 다시 씀.  (원본글 2023년 01월 27, 30일 씀)